1. 희망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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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이야기 |
| 이성숙 |
Date : 2003/09/01 Hit : 7081 Recommend : 2305 |
딸아이의 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필통 안에 들어있는 동전들을 발견했다.
10원짜리부터 5백 원짜리까지 제법 묵직할 정도로 많았다. 돼지 저금통이 있는데 왜 필통에다 돈을 모으는 것일까? 의아심이 생겼다. 돼지 저금통은 꽉 찰 때까지 꺼내 쓸수가 없으니 마음대로 꺼낼 수 있는 필통을 이용하는 건 아닐까?
딸아이를 불러 이유를 물어봤다. 딸아이는 망설이며 말을 하지 않았다.
"너, 군것질 하느라고 그러지?"
내가 다그치자 비로소 딸아이는 입을 열었다.
딸아이는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일이면 늘 교회식당에서 국수 점심을 먹는다. 우리 교회에는 뇌성마비 지체부자유아들로 구성된 사랑반이 있는데 사랑반 아이들도 교회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어느 날 딸아이가 국수를 먹고 있는데 바로 맞은편에 뇌성마비에 걸려 입이 비뚤어진 아이 하나가 국수그릇을 들고와 앉아 국수를 먹더라는 것이었다. 손과 입이 뒤틀려 있으니 국수가락이 제대로 입으로 들어갈 리가 없었을 것이다. 순간 딸아이는 질질 흘리고 먹는 그 아이 모습이 지저분 하다는 느낌이 들어 다른 자리로 옮기고 싶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에 두손 모아 기도한 "착한 아이가 되게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스스로 깨뜨리는 것 같아 자리를 옮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대신 고개를 들지 않고 후다닥 국수를 먹고 일어섰단다. 그때까지 맞은편에 그 아이는 국수그릇을 반도 비우지 못하고 낑낑대며 먹다가 딸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히죽 웃더라는 것이었다.
딸아이는 그대로 돌아서서 나왔는데 마주 웃어주지 못한것이 잘못한 일 같아 마음이 무거웠단다.
그 다음 주일에도 그 아이는 딸아이의 맞은편에 앉아 국수를 먹었단다.
(쟤는 왜 하필이면 내 앞자리에만 앉는 것일까?)
역시 딸아이는 고개만 숙이고 국수를 먹었단다. 고개를 들어 한 번쯤웃어줘야지 생각했지만 마음뿐 제대로 되지 않았단다.
그 다음 주일에도 그 아이는 국수그릇을 들고 식당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또 딸아이의 맞은편에 앉더란다. 그 아이는 뭔가 망설이는 듯싶더니 불쑥 쵸콜릿을 딸아이 앞으로 내밀더란다.
" 너. 먹. 어. 너. 참. 예. 뻐. "
그 아이는 힘들게 발음하면서 활짝 웃더란다.
그 순간 딸아이는 그 아이가 자기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고 또 한 가지, 아름답고 고운 것만 사랑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예수님처럼 병들고 약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만 소중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단다.
그 뒤부터 딸아이는 얼굴을 들고 정희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이와 얘기를 하며 국수를 먹는다고 했다.
"엄마, 정희한테 운동화를 선물하고 싶어요. 운동화가 큰지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자꾸 벗겨져요. "
"그럼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지 그랬니?"
"제 용돈을 모아서 사고 싶어서요."
딸아이는 수줍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가장 나중까지 사랑할 줄 알아야만 생활 속에서 행복을 캐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딸아이의 미소는 알려주었다.
꽁트집 썬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여자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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