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희망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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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이야기 2 |
| 에벤엘 |
Date : 2004/02/13 Hit : 7825 Recommend : 2781 |
나는 가끔 딸아이한테 장바구니를 내주면서 장을 봐오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그때마다 딸아이는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팔작팔짝 뛰어나간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딸아이는 장보는 것으로 잠시 엄마가 된 듯한 기분을 맛보는 것 같다. 딸아이는 내가 적어준 대로 정확하게 산 물건이 가득 담긴 장바구니를 내밀며 .
"잘했지요, 엄마."
뽐내듯이 활짝 웃곤 했다.
그런데 언제나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게 있다. 울퉁불퉁한 감자, 흙이 잔뜩 묻어있는 무우, 잎이 축 처진 시금치등 볼품없는 채소였다. 슈퍼마켓에서 산 것이 아닌 듯했다. 슈퍼마켓에서는 는 동글동글 알이 굵은 감자, 매끈한 무우, 초롯빛 싱싱한 시금치가 진열되어 있었으니까. 나는 딸아이가 슈퍼마켓보다 싼 재래시장에서 채소를 사고 돈을 남겨 군것질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그래서 하루는 채소를 싱싱한 것으로 사오지 못한다고 야단을 쳤다. 딸아이는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우리 아파트 후문에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신문지를 깔아놓고 채소를 팔고 계세요. 그 함머니 채소를 팔아느리고 싶어요."
딸아이는 잔뜩 웅크리고 앉아 채소를 파는 할머니가 빨리 채소를 다 팔고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슈퍼마켓 채소보다 훨씬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그 동안 사줬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딸아이는 내가 장바구니를 내밀 때마다 그 할머니의 채소를 팔아주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 팔짝팔짝 뛰어나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어린 딸이 나보다 훨씬 커보인 하루였다.
자신을 낮출수록 커보이는 그런 삶을 딸한테 배우면서 살아간다.
낮은 자세로 높이 사는 삶, 그건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이 아닐는지.
꽁트집 썬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여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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